읽는다고 집중하다보니 기록과 독후감 업로드 하는 것을 깜빡해 버렸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올려보겠다!!
왜 살아야 하는가의 2번째 철학자 이자 소설가인 쇠렌 키르케고르 의 이야기 입니다.
_‘기독자’가 된다는 것
‘나’는 어디에 있는가? ⇒ ‘세계’란 무엇인가? ⇒ ‘누가’ 나를 이곳에 엮어 두었는가? ⇒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들의 연속은 키프케고르의 생각이다. 여기서 ‘나’를 찾는 일 즉, 진정한 의미의 ‘나’를 찾는 방법은 진짜‘기독자’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진짜 ‘기독자’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개별 인간이 된다는 것이란 이야기이다. 키르케고르는 기존 기독자와 고위 교직자들 중엔 진정한 ‘기독자’가 거의 없다고 보았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그 길은 진정한 ‘기독자’가 되는 길과 같다고 생각하게 된 것 이다.
“‘진정한’기독교 신앙이란 ”정신spirit“이다. 정신이란, 내면성이다. 내면이란 주체성이다. 다시 말해 순수한 정열, 자기 자신의 영원한 행복에 개인적으로 무한한 관심을 기울이는 정열을 담은 주체성이다.”
키르케 고르라는 작가의 글은 무질서 적이고 우회적이며 파편적이여서 모순적이고 논쟁적인 부분이 대개인 글을 쓰는 작가이다. 거기다 다양한 필명으로 저술을 하여 그 모순적이고 논쟁적인 부분은 스스로가 비판하거나 스스로가 논쟁을 하기도 한다.이것은 글의 목적에 맞는 페르소나를 꺼내는 것이라고 본다.
거기다 신앙이 깊은 작가이기에 그의 철학적 견해가 신앙과 완벽 분리해내기란 불가하다고 보는 견해가 맞다. 그의 맥락은 진.정.한.기.독.자이다. 즉, 주체성을 가진 순수한 정열의 기독자? 라고 표현하면 무교인인 나로써는 뭐라고 정의하고 싶은 것인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의 맥락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자=자기 자신이 되는 것
이것을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은 종교인 만이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다.
심미적 생활양식, 삶을 즐긴다는 것
‘심미적’생활방식 = 고통을 회피하고 희열과 즐거움 만을 쫓는 일
이 생활의 제일 큰 고통은 반드시 오는데 그것은 권태로움이다.
: 아마도 지금 내가 느끼는 감각이지 않을까 한다. 나의 20대는 흥미라는 혹은 관심이라는 키워드로 가득했고 그것들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욕망으로 가득했기에 모순적이고 오합지졸적인 삶이 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의 희열감들은 여전히 기억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의 지루함을 느끼듯 인간에게 마저 권태로움을 느끼고있으며 이제는 아를 찾는 행위에 집중하려하다보니 스스로 많은 생각 속에 갇히는 일이 발생한다.
신은 권태로워 아담을 만들고 아담은 권태로워 이브가 탄생하고 그렇게 인구는 늘어감에 함께 권태롭다.: 흥미로운 해석이다.
‘심미적’자아는 변덕스럽다. 아무것도 아님과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 심미적 삶의 사람이 세계를 쾌락의 수단으로만 여긴다는 부분에서 내가 세상은 놀이터 같다고 느끼는 부분을 강타 당한 듯 해 나를 정의 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한판 놀다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오만하다고 느껴진달까?
심미적 자아는 가능성 일뿐 실재성을 얻지 못 한 채 사라진다.
심미적으로 살기 위해서는어떠한 한가지에 열정적이면 안 된다. 항상 적당히 해야한다.통제력을 잃지 않는 것이 핵심
: 아마 나는 어릴적 부터 심미적으로 살아 왔던것 아닐까? 본능적으로 말이다.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도 그렇다고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 것도 무언가 얼메이지 않는 것도 그러나 소속되고 싶은 욕구도 모두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심미적 생활방식에는 체념적인 태도 또한 속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의 욕구를 충족 시킬 수 있음에 기대를 가지지만 그 기대에 달하디 못하는 세계를 폄하하고 부정하다 보면 오히려 죽음이 더욱 매력적이고 욕구를 충족 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세상의 모든 욕구를 경험하고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하다보면 결국은 새로운 자극을 위한 것은 죽음 뿐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비슷비슷하다고 느끼기에 죽음으로 무료함을 끝내기 위해서 죽음이라는 선택지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죽음을 향한 전망뿐이다.
: 죽을수 있기에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또한 불행이지 않을까?
나는 나에게 존재함으로써 즉 나자신이 됨으로써 행복해진다???
미래나 과거에 살고 있을 때 스스로에게 현존하지 않는 것이다. 즉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나자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일 수 있다.
현재를 살아가지 않는다면 과거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는 다가오나 희망은 없으니 그는 젊은 적이 없어 늙을수 없고 이미 늙었기에 젊었던 적이 없는 것이며 살았던 적이 없기에 죽을 수 없고 이미 죽었기에 살아갈 수 없다.
: 이게 뭔 말장난 같은 소리란 말인가..
윤리적 생활양식, 삶을 선택한다는 것
윤리적 영역 = 요구의 영역
엄밀하게 따지면 심미적 생활양식에 대안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충하는 듯한 의미로 언급된다.
선택이란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닌 이것이기도 하며 저것이기도 하는 문제이다. 선택이라는 단어보다는 이행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심미적 자아보다 윤리적 자아는 자유롭다?
심미적 자아는 견디지 못하는 반복을 윤리적 자아는 긍정으로 끌어안 을 줄 안다.
오직 자신만이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며 나를 표출하는 의무를 가지는 것이 윤리적 영역이다.
인간이 무엇을 해야하는가? 가아닌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가? 여야 한다.
: 이 말은 뭔 총체적 난국 같은 말인가.. 어려운 율리적 생활 양식이네.. 심미적 삶에서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 나였다면 그 어디에 속할지 선택하는 내가 윤리적 삶이라는 말인가? 아니면 그 어디에 속할지 속하지 않을지를 선택하는 것이 윤리적인 삶이라는 말인가? 뭔가 읽을 수록 저자와 싸우고 싶어지는 구간이다..
종교적 생활양식, 부조리에 대한 믿음
종교적 생활양식 = 윤리적 생활양식의 업그레이드 버전?
: 아니..심미적 생활양식의 업그레이드가 윤리적 생활 양식이면 그 업그레이드가 종교적 생활 양식이다? 결론은 심미적 생활양식의 업업그레이드 버전이 종교적 생활양식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인 것은 아닐까?
일반적인 옳고 그름 그리고 일반적인 선과 악의 기준과 맞서야 한다.
우리가 모방하려는 신앙은 영적인 사람의 고립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신약성서에 묘사된 신앙 이다.
신약성서 = 전 인류를 미워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 응? 신약성서가 그런 의미였다고?
신은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는지 보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죽이라 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시점에서는 절대적으로 윤리적일 수 없으나 그것을 넘어선 목적과 관계가 고차원적으로 존재했다.
: 일단 신은 또라이다..
명백히 모든 것을 잃고 모든것을 실패 했음에도 모든 것이 괜찮다고, 모든 것이 괜찮아 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 신앙의 부조리를 떠나 무한한 긍정으로 삶을 망치는 길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절망,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과 믿음은 쌍둥이 같은 개념에 핵심 기반을 두고 있다.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절망으로부터 구원할 수 맀다.
: 나 지금 철학 책을 읽는거니.. 사이비 전도 책을 읽는거니..
절망이 죽음으로 끝나기 떄문이 아닌 절망의 핵심은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는 믿음에 있기 때문이다.
삶의 기쁨과 슬픔에 초점을 맞춰 사소한 것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삶을 낭비하는 행위이다.
그저 군중의 일부가 되기를 내버려둔다.
침묵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는 법
자연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신의 음성을 인식하게 된다.
: 쇠렌은 여러 의견이 머릿속에서 싸우는 사람인거 같다. 그러나 각 캐릭터를 부여해 면밀하게 싸운다. 그러다 보니 혼자 읽는 나는 뭔말을 하고자 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심미적이든 윤리적이든 종교적이든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자기자신을 찾는 것을 중요하게 말하고 있다.
왜 살아야 하는가:삶과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선 사상가 10인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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