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만 살아 남았는가? : 사피엔스_유발 하라리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인간의 태생은 어디에 속 할까? 악함은 학습일까, 선함이 학습일까. 그 의문 어딘가에서 혼란 속에서 서성이고 있기만 하기엔 이제 인간의 발전은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인간의 역사가 어디서부터 어디가 진실인가?
이 책을 알았던 것은 모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에서 강독을 듣고 흥미가 생겨서였다. 하지만 이 책을 왠지 시리즈로 읽고 싶은 마음에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나의 시간이 많아지며 그동안 미루던 책들을 읽을 생각으로 서점을 방문했었다. 이것저것 책을 구경하다가 이 책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날 나는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 그리고 휴먼카인드 까지 3권의 책을 구매해 집으로 왔다.
헌데 3권의 책 두께는 나에게 왠지 모를 위화감을 주었다. 소설도 아닌 이 책을 과연 나는 읽을 수 있을까? 아니 완독을 못한 체 또 박아두는 건 아닐까? 읽고 이해는 할 수 있을까? 하는 다양한 생각에 책을 여는 것을 주저하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구매하고 일주일이란 시간을 방치된 책들.. 나는 과연 이 책을 읽기 위해 산 것이 맞는가? 하는 양심? 의? 가책을 느끼며 할 일 없던 그날 책을 펼쳤다.
용기를 가지고 책의 첫 장을 마주했다. 흥미로웠다. 작가의 인사나 서문은 나에게 사피엔스란 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두껍지만 차근히 읽다 보면 언젠가는 다 읽겠다 하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할 정도로 용기를 낸 첫 장이 무색하게 나는 책을 읽어나갔다. 단 며칠 만에 완독을 한 것은 아니다 나름 완독 하는 기간이 짧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만큼 이 책을 꼽씹고 고민하고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뭔가 삶이란 죽음이란? 하는 철학적인 고민이 떠오르는 건 나뿐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이 책에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나는 이 책을 몇 날 며칠 붙들고 살게 만들었다.
▷ 유발 하라리
그의 이름은 정확히 유발 노아 하라리 (Yuval Noah Harari)이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유대인 그는 역사학자로 유명하다. 그 유명세에 맞게 책 내용은 모두 역사 기반의 내용이며 철학적 물음 또한 역사적 기반의 서술에 녺아있다.(개인적 의견;;) 솔직히 유발 하라리를 소개한다고 할 때 생애부터 출판 서적 등등 다양한 것을 설명하는 것은 그저 나무 위키나 인물사전을 베끼는 정도의 일 밖에 되지 않기에 그런 수고를 하지는 않겠다. 정말 생애가 궁금하고 다른 서적이 궁금하다면 구글이나 네이버 등의 다양한 검색 플랫폼에 유발 하라리를 검색하길 바란다.
▷ 시작된 인류
책의 시작은 고대부터의 이야기로 세계 싸 역사 루트 이미지로 시작한다. 고대에 다양한 인종이 있었고 그 인종들이 어찌 분포되면 인지 혁명의 시기나 다른 종족들의 말살 그리고 지금까지 연대기가 그려져 있는 그림과 텍스트로 집고 넘어간다.
처음 우연으로 시작된 인지 혁명에서부터 농업혁명과 인류의 통합 그리고 과학혁명까지의 차근차근 지금까지의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제일 의문을 가진 부분이 이 우연의 인지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 인지 혁명 안에는 우리만이 살아남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유리했던 이유들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농업혁명은 제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정착생활 이후 농축업의 시작이 아니고 거기다가 신성 관련 건축물이 정착생활 이후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닌 신성물을 만들기 위해 장기간 그 장소에 머물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인부들의 생활유지를 위해 농축업을 하게 되고 그렇게 순하고 인간에게 순종하기 시작한 동물들의 유전자는 계속 이어지고 그래서 지금의 농축업의 형상이 만들어지었다는 글을 읽고 //자유를 갈망하는 나는 진화가 덜 되었나?// 하는 농담 섞인 엉뚱한 물음을 떠올리며 인류의 통합 단원으로 넘어갔다.
북부 뉴기니 사람들은 돼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돼지 코에서 큼지막한 살덩이를 잘라낸다. 그러면 돼지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을 때마다 심각한 통증을 느낀다. … (중략) 인간 주인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인간 통합의 단원으로 들어서면 여기서 종교적 믿음이 짙은 이들은 이 챕터를 무척이나 싫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흐름은 토테미즘, 샤머니즘-> 신(종교)->자본-> 사상으로 흐르는 느낌이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연합할 수 있고 지금의 네트워크들로 만들어지어 허구의 사회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이 연대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나는 크게 공감했다.
종교적 의견으로 이 글을 무조건적으로 부정만 할 사람이라면 이 챕터는 가볍게 읽기를 바라는 부분이다. 나는 종교에 회의적인 캐릭터이다 보니 이 부분에 좀 더 진하게 녹아들어 읽기는 했었다. 이 책에서 제일 흥미롭게 읽은 부분으로 꼽으라면 이 챕터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들에게 신앙과 의례를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국의 수호신과 황제의
신성에 경의를 표할 것을 기대했다. 이는 정치적 충성심의 선언으로 여겼다.
종교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에서의 허구로 만들어졌지만 그 허구를 모두 믿으며 그렇게 네트 워킹되어 만들어지는 세계 그리고 여전히 발전하는 지구의 인간들의 이야기는 어느 구절은 경의롭다고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였기에 제일 많은 밑줄을 만든 챕터였다.
이렇게 경이롭기까지 한 느낌을 받게 한 발전을 지나 과학혁명이 온다. 이 부분의 속도감은 정신없이 지나간다. 생각보다 과학혁명 이후 이 세계의 발전의 속도는 타 시기에 비해 엄청나게 짧은 시간에 이루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덕분에 함께 땔 수 없는 부작용들도 있음을 텍스트로 적나라하게 읽어볼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꼭 생각해보고 꼭 이해해가며 고민해봐야 할 문제들의 쟁점을 던져주는 챕터이기도 하다.
선행을 강조하는 프랑스 가톨릭교도들은 하느님의 인간사랑을 강조하는 프랑스 개신교 공동체를 공격했다.
그래서 이 챕터는 이 책에서 제일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고 제일 강조하고 제일 많은 자료와 사례들과 예시들로 작성되어 있다. 이렇게 자본과 과학의 만남은 엄청난 발전과 엄청난 다양함을 만들고 그로 인해 자본은 도드라지고 빈부는 더욱 생기고 사람의 가능성은 어느덧 무한대로 열리게 된 것이라고 본다.
현대 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인 덕분에 기존의 어떤 전통 지식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이다.
▷ 생각은 생각하고 생각하게 된다.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너무 버거웠다. 그러나 벅차올랐다.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고 또 그 생각들에 생각을 했다.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기질 그리고 그 인간들의 성장. 책을 읽는 내내 화가 났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경이로웠다. 생각이 모두 정리가 되어 글을 쓰는 것이 아닌 글을 쓰다 보면 정리가 되길 기도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이 책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고 온전히 이해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이 생각과 감정들이 혹여나 뒤틀린 나의 마음으로 인해 손상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스러움도 들었다.
성선설, 성악설, 성무 선악설 등등 다양한 인간 본질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주장들이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학자도 인간의 본질을 확고하게 정답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 많은 논리들에는 분명 허점이 존재하고 혹은 말장난 같은 이론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정답은 아직도 아니 아마 그 누구도 찾지 못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성악설을 좀 더 지지하는 입장이다. 인간의 선함은 그저 교육과 제도로 만들어진 학습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가끔은 성무 선악설이 맞나? 하면서도 난 성악설이 더욱 신빙성을 가지는 편이다.
사피엔스를 읽는 내내 성악설의 마음이 더욱 갔다. 다양한 인종에서 지금은 사피엔스의 유전자만이 존재하는 이유. 혼재된 유전자이지만 지금 존재하는 인간의 거의 최대 유전자는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은 다른 종족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 종이 훨씬 수적으로 많이 살아남았었고 이제는 그 존재들이 지구에 남은 최종의 인종이라는 점에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 자체는 태생이 악한 존재, 이기적인 존재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욱 단단해지는 느낌이었다.. 인간인 나 스스로 조차 회의감을 느끼며 인간이란, 즉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고 불리는 모든 종족들이 순간 ‘역겹다’라는 찰나의 의견도 떠올랐었다. 내가 부정적일 수 있다. 당연히 나의 의견에 대해 반박하는 이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나의 그런 오만한 의견에 반박했고 경솔한 생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싫어하거나 사람을 무조건 적으로 부정적 시각으로 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고 그 사람의 노력과 그 사람의 신념을 보려고 노력하고 살고 있다. 나 또한 올바른 신념과 가치관을 구축하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나 스스로는 좀 힘들지만 언제나 내 생각에 반대되는 그리고 반박되는 의견들을 보고 생각하고 양극의 모든 것들을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좀 더 중립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 제발 읽어주세요.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휴먼카인드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팩트 리스트까지 이 책들은 내가 처음으로 추천 이유를 적는 이례적인 도서일 것이다. 그동안은 그저 나의 개인적 의견으로 타인이 읽으면 좋지만 안 읽어도 어쩔 수 없지라는 의견으로 글을 썼었다.
하지만 이 책들은 꼭 읽었으면 좋겠다. 더욱 많은 이들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책들을 읽고 더 많은 생각들이 모이고 서로 이성적 토론이 가능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본인의 의견만이 본인의 생각만이 무조건적인 일방적 소음이 아니라 다양한 눈의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 서로의 의견을 듣고 교류할 수 있는 인간 본질이 악함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나 포함 태생이 선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더불어 선한 이들이 선한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착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착한 척하며 가식적으로 살아갈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난 콩 한쪽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타인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닌 타인에게 증오나 타인에 대한 불만 타인 의견에 대한 차단이 아닌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쥐꼬리 만한 월급이라도 단동 500원 단돈 1000원이 어려운 이들에게 최소한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내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다.
점점 더욱더 삭막해지는 인간사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너무나 당연해진 듯한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당연해지고 나에게 피해 오는 것을 그 무엇보다 격렬하게 거부하는 이 세상에 아직까지 타인을 위하는 마음들이 모이는 많은 경험들이 있다. 솔직히 그 또한 나의 시각에선 본인이 편하기 위해 남을 돕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들의 선함은 온전한 선함으로 보지 못하는 가식으로 보는 경향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러지 않으려 노력한다. 베풂을 하는 이들의 마음을 온전히 바라보고 나 또한 베풀 수 있는 인간이 선한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는 것을 그것이 인간이기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임을 믿고 싶다..
더욱 만은 이들이 인간의 본질을 고민하고 그저 개인의 삶이 아닌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시각을 함께 해 주었으면 좋겠다. 부익부 빈익빈 유전무죄 무전유죄 그 시절이 점점 희미해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의 진영논리와 본인 개인의 이익만을 쫓기보단 길게 넓게 깊게 소통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하루 24시간 매시간 매분 매초가 나 하나 감당하기도 버거운 시간이지만 그 시간들 사이사이 나의 휴식이 그러한 것들을 생각해 움직이고 그로 인해 정말 미세하게나마 변화에 단 0.000000000000001%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나는 그 0.000000000000001% 한 사람이 한 명이 아닌 두 명 세명이 되었을 때 진정한 기득권의 마음이 변화하고 움직이고 눈치 보고 부익부가 빈익빈을 위해 움직이는 토대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직은 인간에 대한 작은 희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인간에게 지쳤다면 그 모든 것이 본인 탓만 같다면 마음을 잠시 고르며 이 이야기들을 곱씹어 보길 추천한다.